한국에 살던 20대 시절까지는 특별히 무언가를 취미로 하거나 즐기는 게 없었다. 취미를 적어야 하는 때마다 만만한게 독서였으나 책도 관심가는게 있으면 읽어볼 뿐이지 내가 찾아서 읽는 편은 아니다. 드라마도 마찬가지 였다. 어쩌다 보게되면 보는 거지 내가 찾아서 보거나 꾸준히 본 드라마가 많지 않았다. 당시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모래시계나 여명의 눈동자도 보게 되면 보는 거였다. 온라인상의 다시보기가 없던 시절이었기에 시간을 놓치면 못 보고 주말에 재방송을 통해 볼 수 있었어도 딱히 챙겨서 보려하진 않았다. 그보다 바쁘고 중요한 일들이 많았다.
한국 드라마를 공들여 보기 시작한 건 미국에 와서였다. 미국 생활을 하다보면 뭔가 하나씩은 이미생활의 답답함을 해소할 취미들을 갖게 되는데 남편은 테니스나 탁구 등 유학생활 동기들과 함께 하는 스포츠에 빠졌다면 나는 한국 드라마였다. 처음에는 영어를 배우겠노라고 프렌즈라던가 미국 방송사에서 해주던 시트콤 같은 걸 매일 틀어놓고 보았다. 그런데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아직 영어가 유창하지 않아서 기껏해야 30%나 알아들을까 싶은 영어로만 듣고 있으려니 답답하고 내가 모르는 문화적인 배경과 공감가지 않는 스토리 전개는 금방 지루함을 느끼게 했다. 그런데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한국인 유학생 부부가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왔다며 자기들은 다 봤으니 갖다 주기 전에 보라면서 한국 드라마 비디오를 갖다 주었다. 뭐였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간만에 한국의 거리와 생활들을 보고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전개를 보니 답답한 속이 뻥 뚤리는 것 같았다. 이후 그 부부가 몇번 더 비디오를 돌려주기 전에 보라며 우리에게 비디오를 빌려주었는데 매번 그렇게 그 부부가 돈을 주고 빌린 것을 얌체처럼 무료로 보기만 하니 미안해서 우리도 비디오 가게 가서 비디오를 빌려서 다보면 서로 바꿔보기로 했다. 그렇게 한국 드라마는 힘든 미국 생활 적응기에 나를 버티게 해주는 버팀목이었고 갑갑한 외국 생활을 잠시 떠나 한국에서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비상구가 되었다.
디지털 데이터가 아닌 비디오 테이프로 미디어를 접하던 시절이었던 그 때는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한국 비디오 가게에 가면 여러 영화 비디오들과 함께 한국의 드라마들을 비디오로 녹화해서 여러개 복사해 놓고 돈을 받고 빌려주었다. COPYRIGHT 이나 이런게 지켜졌는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최소 16부작 혹은 그 이상의 드라마를 당시 환율로 개당 2-3000원에 빌려주었다. 한 시리즈를 다 보려면 적어도 3만 2천원이 드는 것이다. 당시 우리 사정에는 사치같았지만 나에게는 숨통 같은 것이라 끊을 수 없었다. 이후 시대가 바뀌면서 비디오 테이프 녹화가 아닌 디지털 파일로 드라마를 저장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이민자들을 위한 한국 드라마 사이트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드라마 파일을 온라인 스토리지에서 다운받아 볼 수 있는 링크들을 알려주었다. 사실 시리즈물의 비디오를 빌려보는 건 가정경제에 꽤 부담이 되는 일이었던지라 COPYRIGHT 법에 걸리는 일이었음에도 (철컹철컹?) 다들 그렇게 본다는 핑계를 대며 잠시 양심을 내려놓고 열심히 그런 비디오들을 다운받아 보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인터넷 속도로는 한편을 다운 받는데 10시간이 넘게 걸렸다.한국은 빠르게 인터넷이 발달되었지만 미국은 꽤 늦게까지 고속 인터넷망이 깔리지 않아 답답한 속도로 매일 밤마다 다운로드를 걸어놓고 컴퓨터를 켜둔채 자고 일어나면 다운받아져 있거나 그나마도 중간에 인터넷 속도 저하로 에러가 나서 처음부터 다시 받아야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드라마를 보고싶은 열정으로 부끄러운 일이지만 열심히 다운받아서 봤다. 방송사 홈페이지에 다시보기 서비스가 생기긴 했지만 해외에서 볼 수 없게 제한이 걸려 있었기 때문에 당시에 해외에서 최신 드라마를 볼 수 있는 방법은 이것 뿐이었다. 그렇다고 불법 다운로드가 괜찮다는 건 절대 아니지만...이후 인터넷 스트림이 생기고 더이상 오랜시간 파일을 다운받지 않아도 실시간으로 온라인상에서 드라마를 볼 수 있는 사이트들이 생겨났고 한국 드라마가 해외에 알려지면서 VIKI, 넷플릭스, 디즈니 플러스 등의 서비스를 통해 미국에서도 한국 드라마를 자유롭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 회당 2-3000원의 돈을 내고 비디오를 빌려봐야 할 때에 비하면 10불 내외의 월정액으로 최신 드라마를 거의 다 볼 수 있는 지금은 거리낄 것 없이 맘껏 좋아하는 드라마를 볼 수 있어 너무 행복하다.
모든 K-DRAMA 가 다 재밌거나 좋은 것은 아니다. 가끔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 어색해서 집중이 안되는 드라마도 있고 맥락없이 이리 튀고 저리 튀는 스토리에도 별 수 없이 열심히 연기하는 배우들이 안타까운 드라마도 있다. 스토리 라인도 좋고 배우들도 좋은데 이미지와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데 치중하여 이도저도 아닌 드라마를 만들어 놓는 감독들도 있다. 오래 드라마를 좋아하다 보니 믿고보는 감독과 작가가 있고 최애 배우들도 있지만 사실 연기 좀 하고 잘생기고 이쁜 배우들은 거의다 내 최애 리스트에 들어있긴 하다. 어떤 배우들은 처음에는 별로 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연기도 자연스러워지고 점점 더 좋아지기도 하기 때문에 열심히 하는 배우들은 사실 다 좋아한다. 사람은 누구나 노력하면 발전을 하기 때문에 과거에 별로 였더라도 곧잘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내기에 왠만하면 편견없이 대부분의 드라마를 보려고 하는 편이다. 하지만 모든 드라마를 다 볼 수 없기에 개인적인 기준으로 드라마를 선별한 드라마를 정리해서 포스트해 볼 생각이다. 이에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기준으로 갑갑하고 힘들었던 외국 생활 중 나의 버팀목이며 비상구였던 k-드라마에 대한 포스트가 이어질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