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2025/11/06

내가 원하던 대로 풀린 이민 생활은 아니었지만 나쁘지 않다

 이민 생활의 시작은 남편의 유학이었다. 그러나 꼭 남편의 유학만을 위한 미국에 온 건 아니었다. 나 역시 하고 싶은 공부가 있었고 그래서 F2 비자를 받아도 되었지만 일부러 남편과 따로 F1 비자를 받아서 왔다.  그러나 두 사람의 유학비를 감당할 수 없어서 남편 공부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하고 비자를 F2로 바꿔야만 했다.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한없이 있을거라는 짧은 생각이었다.  2년쯤 되었을 때 첫째를 가졌다. 3명의 아이를 낳고 키우는 동안 공부할 기회는 멀어졌다. 결국 내가 원하던 전공은 내려놓아야 했고 내가 원하던 길을 갈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과 상실감에 우울증도 겪고 그저 엄마가 되어 애들을 키우는 것이 내 인생의 전부인 것 처럼 생각되던 어떤 날에는 Identity Crisis , 즉 '나는 누구 여긴 어디?' 라며 나라는 사람의 가치를 찾지 못해 힘들어했다.  그러면서 우연히 교회에서 웹사이트를 만드는 일을 담당하게 되었다.  코딩이며 웹이나 서버등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지만 예전에 다움 카페에서 활동하면서 html 를 이용해서 폰트의 크기나 색깔을 바꾸어 포스팅을 하던 정도의 지식으로 교회에서 그 일을 담당할 사람으로 뽑히게 된 것이다. 결국 웹사이트를 만들기 위해 프리랜서로 웹사이트를 만들어주시는 분을 만나 함께 웹사이트를 만드는 일을 진행하게 되었다. 나중에 내가 관리를 해야 했기 때문에 그 분은 웹사이트를 만들면서 친절하게 나중에 웹사이트의 내용을 바꾸는 방법, 메뉴를 추가하는 방법등을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크게 어렵지 않아 보였다. 웹사이트가 완성된 이후에도 그분이 알려주신 방법으로 이것저것 해보면서 하나씩 알아가다 보니 재미가 붙어서 새로운 것도 시도해보곤 했다. 당시 워드프레스 등 오픈 소스를 통해서 코딩을 하지 않아도 쉽게 웹사이트를 만드는 방법이 개발되어 나오기 시작했고 혼자서 배워가면서 웹사이트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우연히 주변 지인 가운데 웹사이트를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몇개의 웹사이트를 실제로 만들어서 운영하도록 도와주게 되었다. 

사실 나는 단 한번도 내가 기술적인 일에 재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한국에서는 집에 뭔가 고장나거나 하면 AS 를 통해 기사님들이 오셔서 저렴한 가격으로 금방 고쳐주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기술적인 일을 해야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사람을 고용하면 무조건 일이십만원은 기본으로 서비스비가 나가고 거기 부품 비용까지 하면 몇십만원이 그냥 나가기 때문에 간단한 고장들은 본인이 직접 고치게된다. 또 대부분의 가구가 완성형으로 배달되는 한국과 달리 모든 가구가 조립식으로 나와 배달 후 집에서 직접 조립을 해야한다.  만일 기술자를 고용하여 조립을 하면 상당히 비싼 서비스비를 내야했기에 유학시절 가구를 새로 사면 직접 조립을 하곤 했다. 미국에서 Home Depot 나 Lowes 같은 집을 수리하거나 업그레이드 하는 부품이나 도구들을 파는 곳들이 발달한 이유일 것이다.  남편은 그런 면에서는 영 재주가 없었다. 돈은 없고 남편은 할줄을 모르니 결국 집에 뭔가 고장나거나 가구를 조립할 일이 있으면 내가 나서야 했다. 다행이도 내가 그런 방면으로는 썩 재주가 있었다. 사실상 설명서가 잘 되어 있어 논리적 사고가 가능하면 되는 정도의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남편은 간단한 옷걸이 행거 조차 설명서를 이해하는데만도 2시간이 걸렸다. 나는 설명서를 보지 않고도 부품 모양만으로 대충 유추해서 조립을 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고등학교 때 수학을 좋아하면 이과, 수학을 싫어하면 문과 이렇게 나뉘고 그 때 이미 공대와 인문대가 나뉘어 버리는 경향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  수학을 종아한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수학을 싫어했지만 못하진 않았다. 그나마 모의 수능 시험에서 수리영역에서 문과 중에서 최고점을 받은적도 있었으니까...하지만 더 복잡한 수학까지는 공부하기 싫었던지라 문과를 택했다. 그래서 아예 공과대는 쳐다도 보지 않았기에 내가 그런 재능이 있다고 생각도 못했다. 미국에 와서야 내가  기술적인 일을 좋아하고 어느정도 재능도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결국 지금은 현재 일하고 있는 비영리 단체에서 웹사이트와 서버 관리자로 일하고 있다.  한국에 그대로 있었거나 원래 하려고 했던 아트 쪽 일로 공부를 이어갔다면 계발되기 어려운 능력이다. 

지금은 나름 만족하고 즐기면서 일을 하고 있다.  이민 생활을 하시는 분들 중에는 나처럼 원래 한국에 있었더라면 하지 않았을 일을 하시는 분들이 많다.

이민생활은 나에게 많은 어려움과 혼돈을 주었지만 새로운 길을 열어준 것은 분명하다. 

한국에서 살았더라면 분명히 익숙함과 편리함이 주는 안정감으로 내가 그려놓은 원, 소위 우물 안에서  벗어나지 않고 살았을 것이다. 반면에 이민 생활에서는 이전의 나를 내려놓고 제로베이스로 나를 평가하먀 아무것도 아닌 나를 받아들이는과정을 겪어야만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 과정을 통해 나는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가능하면 외국에서 일을 하거나 이민에 대한 기회를 잡기를 권유하곤 한다. 가능하다면 많은 이들이 너무 늦기 전에 그런 기회를 가져보기를 정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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